date
2016.04.02
modification day
2021.04.13
author
김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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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즐기려면 '일단 시작부터 하자'

“OO아, 지난 번 말한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계속 논문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내가 한국에 와서 현재 연구실의 대학원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대답 중에 하나다. 물론 실험을 하려면 꾸준히 관련 논문을 찾아 보면서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달간 논문을 찾아가며 공부만 하고 있고, 정작 그에 대한 실험은 시작은커녕 필요한 시약 주문, 장비 조사 등 기본적인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 역시 학부와 석사학위 시절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실험을 하나 하려고 해도 논문을 찾아보며 혼자서 끙끙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과연 저런 실험들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큰 스케일의 실험을 할 수가 있을까? 등을 이유로 시작도 못해본 연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런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2007년 한국연구재단 국제공동연구지원사업(학문후속세대인력파견-해외인턴십)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박사학위과정을 하게 된 시점부터다.와이즈만연구소는 누군가를 위해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즐기면서 연구하고 있었다. 즐기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곧 내가 스스로 새로운 지식과 실험기법을 찾아서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구를 즐기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기면서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기법의 실험들도 찾아서 직접 하게 됐다. 즉 마음 속 깊이 존재하던 연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와이즈만연구소에서 경험했던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한 저명한 교수가 세미나를 온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교수의 세미나를 듣던 중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자신이 세미나를 듣다가 놓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다시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할 수가 있을까라며 의아해 했지만, 그 교수는 친절하면서도 알기 쉽게 다시 설명했다.세미나가 끝난 후 그 학생은 교수에게 곧바로 달려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후 실험실로 돌아가 여러 시약들을 주문했다. 그렇게 며칠 뒤 실험이 시작됐다. 그 학생은 네이처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일단 실험을 시작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학위 연구를 마칠 수 있었다. 


나의 지도교수는 “모르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실패를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일단 실험을 해야 진전할 수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대학원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시작하고 나면 많은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고, 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활발한 토의를 통해서 문제점을 해결해 갈 수 있으며, 더 나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그러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시작을 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 속 깊이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어차피 한번 부끄러우면 그만이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그만이다. 한 발짝 더 전진하기 위해 한 번의 부끄러움은 지나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2015년 한국연구재단의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에 선정됐다. 사실 나는 대통령 Post-Doc에 선정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지원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지원해서 선정되지 못하면 내 스스로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Post-Doc에 선정되겠어?’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점은 스스로 더욱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겸손해져야 두려움을 이겨 내고 좋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매우 간단하다. 철저하게 실력을 쌓고 노력하고 준비한 자만이 시작할 수 있고,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양승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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